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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투어 가이드와 함께 가야 하나요?

by hainya1004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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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투어 가이드 추천 몽생미셸 투어 정보

 

안녕하세요,

몽생미셸 투어에 대한 정보 공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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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 및 노력이 많이 필요한 몽생미셸 투어..
가이드에 역할이 또한 중요한 것이 여행입니다. 몽생미셸 투어는 성지라고 불리는 장소인 만큼 그 여정에 이동이 어렵습니다. 아래 수도원에 설명자료 내용을 남기며 이정도 내용보다 더 많은 지식과 내용을 가진 투어라면 꼭 가이드와 함께 가시길 추천합니다. 후기를 통해서 여행 투어사를 고르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 하지만 저는 제이스마트 투어를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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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수도원 아래 설명자료

 


몽생미셸 수도원

 


몽생미셸 설명
몽생미셸의 오랜 역사는 708년 아브랑슈의 오베르 주교가 몽톰브(Mont-Tombe) 산상에 대천사를 기리는 성당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바위산은 곧 주요 순례지가 되었다. 10세기에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이 세워졌고 그 아래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14세기에는 마을이 바위산 바로 아래까지 확장되었다. 백년전쟁이 끝날 때까지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몽생미셸은 또한 축성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성벽과 요새가 영국군의 총공격에도 굴복하지 않자 몽생미셸은 민족 정체성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수도원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해산되어 1863년까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1874년 사적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수도원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후 섬 전체에 끊임없이 공사가 이어졌다.
덕분에 중세인들이 천상의 예루살렘이 지상에 낙원처럼 재현되었다고 여긴 수도원의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몽생미셸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아래층 설명
수도원의 요새화된 입구인 근위대의 방1을 지나면 소고티에 (Saut-Gaultier) 테라스까지 가파른계단2을 오르게 된다. 오른쪽으로 교회와 왼쪽에 아찔한 통로로 연결된 수도원 숙소사이로 난 길을 지난다.
14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세워진 이 숙소는 서쪽 테라스3는 수도원 성당의 소박한 안뜰과 18세기에 화재로 파괴된 본당의 첫 세기둥 사이의 거리로 구성된다. 고전 양식의 정면은 1780년에 복원되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캉칼 바위부터 브르타뉴 해안과 동쪽으로 노르망디 절벽까지 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또한 2개의 화강암 대산괴, 즉 남서쪽으로 육지에 있는 몽돌(Mont-dol)과 북쪽으로 통블렌(Tombelaine)섬도 볼 수 있다.
멀리 작은 섬들로 구성된 쇼제 군도가 보인다. 몽생미셸을 건축할 때 이곳에서 화강암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끝으로 1897년에 세워진 신고딕 양식의 첨탑과 그 위에 성 미카엘의 금빛 동상이 있는 멋진 풍광을 테라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수도원 성당4은 1000년도 초기 수십년에 걸쳐 해발 80미터 바위산 꼭대기, 길이 80미터의 상단에 세워졌다. 본당은 아치형 회랑과 누대 그리고 높은 창의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층 설명
본당은 목재로 내벽을 두른 반원 궁률이 있는 구조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내진은 1421년에 무너졌으나 백년전쟁이 끝난 후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투어는 회랑5를 통해 계속된다. 건물들 사이로 이동할 수 있는 이 갤러리는 원래 기도와 묵상을 위한 공간이었다. 종교 축제 기간에는 이곳에서 행렬이 펼쳐졌다. 회랑은 18세기 초에 세워진 라메르베유라고 부르는 건물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구내식당, 부엌, 교회, 숙소, 고문서 보관실을 둘러보고 다른 계단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서쪽으로 바다를 향한 중앙의 만에 어쩌면 사제단 회의장이 건립될 수도 있었다.
회랑의 갤러리는 하중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약간 어긋나게 2열로 배치된 원주 사이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
구내식당6에서는 수도사들이 남쪽 벽의 설교단에서 한 사람이 성경을 읽는 가운데 조용히 식사를 했다. 이 방의 측면 벽에는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좁은 창들이 있다.
구내식당 바로 밑에 있는 순례자의 방7으로 계단을 통해 이동한다. 이 방은 왕과 귀족들을 맞이하는 데 쓰였다. 커다란 기둥들이 있는 지하 기도실8로 투어를 계속한다. 지하 기도실은 15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며 수도원 성당의 고딕식 내진을 떠받치고 있다.

 


중간층 설명
생마르탱 지하 기도실9로 향한다. 1,000년 이후에 지어진 이 기도실은 수도원 성당에서 수랑의 남쪽 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이 기도실에는 거리가 자그마치 9미터에 이르는 놀라운 궁륭이 있다.
생마르탱 지하 기도실에서 좁은 통로를 따라 수도사들의 유골 안치소10로 쓰연던 거대한 바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 바퀴는 수도원이 감옥으로 바뀌었던 시절 수도원에 감금된 죄수들의 양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1820년 경에 설치되었다. 이것은 중세에 공사장에서 사용했던 바퀴를 모사한 것이다.
이제 서쪽 테라스 아래에 있는 북남쪽 계단12을 올라간다. 이곳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에서 교통의 주요 축이다. 2개의 본당과 긴방이 있는 산책장13을 향하고 있다. 산책장을 지은 건축가들은 첨두형 교차부 위에 궁륭을 올려 놓을 생각을 했다. 이런 혁신적인 생각은 12세기 초에 고딕 양식의 태동을 알리고 있다.
기사의방14으로 들어서면 라메르베유를 다시 만나게 된다. 회랑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라메르베유는 수도사들의 작업실이자 연구실이었다. 이들이 남긴 지적 작업과 원고는 아브랑슈에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순례자의 방 아래 첫 번째 층에 세워진 사제관15을 끝으로 라메르베유 방문을 마치기로 한다. 수도사들은 바로 이곳에서 다양한 형편의 불우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맞이했다.

 

 

독특한 설계
몽생미셸 수도원은 다른 수도원들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된 독특한 기념물이다. 중세의 시공자들은 바위산의 피라미드 형태를 고려하여 화강암 바위 주변에 건물을 세웠다. 산 꼭대기에 위치한 수도원 성당은 높이가 80미터에 이르는 성당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지하동굴 상단에 세워졌다.
흔히 수도원 건축의 백미라고 하는 라메르베유 건물은 13세기 건축가들이 바위산의 경사면에 3개의 층으로 된 건물 2채를 세울수 있을 만큼 건축적으로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은 매우 정교한 기술적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먼저 1층에서 지하실의 좁은 측량이 버팀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서양 건물에서 첫 2개 층의 지주가 서로 겹쳐져 있다. 끝으로 건물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가벼워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건물은 외부에서 강력한 부벽이 떠받치고 있다.
수도원 생활의 주요 원칙도 건물의 구성과 구조에 영향을 주었다. 몽생미셸의 수도사들이 성 브누아의 규칙을 준수하였기에 수도사들이 하루 종일 기도와 노동에 전념 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했다.
은거생활의 의무 준수, 즉 수도사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되는 공간이라는 원칙에 따라 위의 두 가지 활동을 중심으로 방을 구성했다. 이 원칙에 따라 세속인을 맞이하는 방들은 라메르베유의 1층과 2층에 따라 만들어졌다.
몽생미셸 수도원의 건축에는 수도 생활의 책무와 지형상의 제약이라는 두 가지 주요한 요건이 지배적으로 작용했다.

 


성 미카엘 숭배
천사 군대의 수장인 성 미카엘은 중세의 종교적 감수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미카엘은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에 악마의 상징인 용과 맞서 싸워 무찌르는 모집으로 등장한다.
내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속에서 살아가던 중세인들에게 성 미카엘은 최후의 심판일에 죽은 자를 인도하고 인간의 영혼을 저울에 다는 인물이다.
성 미카엘에 대한 숭배는 4세기 이래 동양에 널리 퍼졌으나 서양에는 492년 몬테 가르가노(이탈리아)에 최초의 성소가 건립되면서 5세기 말에 와서야 등장하게 된다.
1,000년 경에는 성 미카엘을 기리는 교회와 예배당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주로 언덕이나 갑의 상단에 세워졌다. 백년전쟁 후에는 몽생미셸이 영국군에 저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 미카엘에 대한 숭배가 새로운 차원에 돌입하게 되었다.
끝으로 이러한 숭배는 반종교개혁과 함께 새롭게 비약적으로 발전 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오직 군대를 이끄는 천사만이 프로테스탄트 이단에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의 도상에서 성 미카엘은 흔히 칼과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전통과 민간종교는 성 미카엘을 무기와 저울에 관련된 모든 직종의 사람들과 기사들의 수호성인으로 만들었다.
탑을 내려다 보는 동상은 대천사에 대한 전통적인 특성을 재현하고 있다. 동상은 32미터 높이의 새로운 첨탑을 그 위에 세우고자 한 건축가 빅토르 프티그랑(Victor Petitgrand)의 부탁을 받아 1897년 조각가 에마뉴엘 프레미에(Emmanuel Fremiet)가 제작했다. 이 동상은 1987년에 복원되었다.

 

 

몽생미셸 간략한 소개
몽생미셸은 브르타뉴주와 노르망디주 경계에 위치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노르망디의 랜드마크중 하나입니다. 1979 년에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현재는 연간 35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이 보실 수 있는데요. 프랑스 자체가 일본인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천공의성 라퓨타의 배경이 된곳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가 미야자키 하야호는 몽생미셸 앞에서 몇달을 기거하면 그림을 그리고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몽생미셸과 유사한 로마의 산안젤로 같은 유명한 성이 유럽에는 많습니다.

 

몽생미셸의 지리적 특성
1. 해안에서 6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독특한 위치
2. 78m 화강암 돌산위에 지어진 것
3. 최대 시속 3.7키로, 15미터의 유럽에서 가장 빠르고 높은 조수 간만의 차이

 

숨여진 수 많은 이야기가 몽생미셸에 있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여행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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