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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원리 한글날 정보

by hainya1004 202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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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한글날에 한글 창제 원리, 한글 자모음 조합수, 한글날 정보, 한글날 내용, 한글날 의의

 

안녕하세요,

10월 9일 한글날이 다가오면서 한글날에 관련된 정보 소개 및 공유합니다. 

 


Q1. 한글의 창제 원리는 무엇인가요?
세종은 전부 17개의 자음과 11개의 모음자를 만들었습니다. 자음은 발음기관를 상형화 하여 만들었고,
모음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천지인을 본따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창제 원리를 고찰해봅니다.
1. 자음 창제 원리
자음은 글자의 기본이되며 이것은 기본자라 합니다. 이 기본자에 획을 하나씩 더해서 나머지 글자가 만들어졌습니다. 기본자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습니다.
ㄱ - 뿌리가 목구멍을 막는모양. 어금니 옆에서 소리가 난다 하여 '엄소리'라고 했습니다.
ㄴ - 혀가 윗 임몸에 닿는 모양. 혀 옆에서 소리가 난다 하여 '혀 소리'라고 합니다.
ㅁ - 입술의 모양. 입시울소리 라고 합니다.
ㅅ - 이의 모양 니소리 라고 합니다.
ㅇ - 목구멍의 모양 - 목소리 라고 합니다.
즉, 말소리를 내는데 필요한 중요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자음의 기본 글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ㅋ은 ㄱ 보다 획이 하나 더 많다. ㄱ보다 소리가 더 난다.
기본자 ㄱ에 획을 하나 더하면 소리가 강해진다. 이렇게 더하는 것을 '가획'이라고 합니다.
ㄴ역시 획을 더하면 ㄷ이 되고 여기에 획을 더하면 ㅌ이 됩니다.
당시에 만들어 글자들중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ㄹ, 세모, ㅇ 모양을 달리하여 만든 글자들은 모양이 다르다고 하여 다를 이에 몸체자를 써서 이체자라고 합니다.


2. 모음 창제의 원리
모음은 천지인인 '.,ㅡ,ㅣ'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둥근 모양을 본떠서 '.'(아래자)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땅의 평평한 모습을 본따'ㅡ'자를 마지막으로 사람의 서있는 모습을 본떠서 'ㅣ'를 만들었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습을 본따 모음의 기본자를 만든 후 이들은 서로 결합하여 다른 모음을 만들었습니다.
ㅏ, ㅑ, ㅓ , ㅕ, ㅗ, ㅛ, ㅜ, ㅠ
이와 같이 결합하여 만든 것 중 ㅏ,ㅓ,ㅗ,ㅜ는 초출자라고 하고 초출자에 다시 기본 모음을 더한 ㅑ,ㅕ,ㅛ,ㅠ를 재출자라고 합니다.
.(아래아)는 현재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ㅗ ㅓ를 이용하여 모음글자끼리 어울릴 때 'ㅘ, ㅝ'처럼 같은 부류끼리 어울리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3. 초성, 중성, 종성의 삼분법원리
3.1 한글은 음(절)을 초성과 중성, 종성으로 분석하였습니다.
3.2 초성과 중성을 구분하여 각각의 문자를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3.3 종성에 대해서는 따로 문자를 만들지 않고 초성자를 같이 쓰기로 하였습니다.
3.4 초성과 종성 모두 약간의 기본자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나머지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3.5 초성의 기본자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들고, 중성의 기본자는 천,지,인을 상형 하였습니다.
3.6 초성의 경우, 각 발음 위치별로 가장 약한 소리를 기본자의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는 센 정도에 따라 거기에 획을 더하였습니다.
3.7 중성의 글자꼴 결정에는 음양오행설 등의 철학적 원리도 반영되었습니다.
3.8 실제로 글을 적을 때에는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합해 적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음을 세 부분으로 분석하고, 각각의 목록과 체계 그리고 특징 등을 정확하게 파약하여, 그 내용을 제자(자형)에 그대로 반영했던 것입니다. 이는 소리의 체계와 특징을 글자(꼴)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2. 한글을 자모로 조합해서 몇개나 만들수 있을까요?
한글의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수는 모두 11,172자이다.

 


Q3. 한글날 정보, 정의와 유래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분야 : 양력세시
계절 : 가을(양력 10월)
날짜 : 양력 10월 9일
한글날 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습니다.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었으며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것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한글날 유래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25년 곧 서기 1443년에 완성하여 3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세종 28년인 서기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되었습니다. 한글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주도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인데 지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세계 문자 역사상 그 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한글만큼 우수한 문자가 또 없다는 것을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글의 창제로 말미암아 우리는 문자가 없어서 남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다가 우리말을 중국말 문법에 맞추어 쓰던 불편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문화, 경제, 정치 등 각 분야에 걸친 발전을 이루어 세계 유수한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습니다. 한글날은 이러한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공로를 기리는 날입니다.

 


Q4. 한글날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한글날 내용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1926년의 일입니다.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곧 오늘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 29일(양력으로 11월 4일)을 가갸날이라 하고, 그날 서울 식도원(食道園)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시초입니다. 이 해는 한글이 반포된 지 8회갑인 48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당시는 우리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억압에 눌려서 위축되어 있던 때라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한글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 28년(1446) 9월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라고 한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며, 이름을 가갸날이라 한 것은 그때 아직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하지 않았고, 한글을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였기 때문입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언문,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러 오던 훈민정음을 1910년대에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 쓰임이 보편화되지 않았습니다.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꾼 해는 1928년이었습니다. 1931년에는 그동안 음력으로 기념해오던 한글날을 양력으로 고치기로 하고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환산 방법에 의문이 생겨 1446년의 음력 9월 29일을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쓰던 그레고리력으로 다시 환산한 결과 10월 28일과 일치하여 이날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었는데, 서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정인지가 썼다고 기록되어 있어 훈민정음, 곧 한글을 반포한 날이 좀더 확실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여러 가지 통제가 심했던 까닭에 기념을 할 사정이 못 되었습니다.
한글날을 양력 10월 9일로 확정한 것은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곧 ‘정통 11년 9월 상한’의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그것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로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1946년에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여 거국적인 기념 행사를 하였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한글날 기념 행사는 민족주의 국어학자를 비롯한 소수 유지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졌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한글날 행사가 전국적인 것이 되어 해마다 큰 기념식을 하였습니다.
1970년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에서 관공서의 공식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한글날은 한동안 법정공휴일의 지위를 잃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1990년에 휴일이 많은 것은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경제 단체의 문제 제기가 있어 법정공휴일 축소 문제가 논의되었고, 그해 8월에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더불어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의결,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글 관련 단체의 꾸준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의 결과로 2005년 12월 29일에 국회에서 ‘국경일에관한법률’을 개정하여 2006년부터 한글날이 국경일로 정해졌습니다.
한글날 기념 행사는 광복 이전부터 한글학회가 주관해오다가 1957년부터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게 되었고, 1981년에는 서울시, 1982년부터는 문화공보부(현재의 문화관광부)에서 맡아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날은 정부 주관으로 삼부(三府)의 요인,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기타 문화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하고, 국어의 연구와 발전, 해외보급에 공로가 있는 이들에게 훈포장을 주고 표창을 하는 한편, 한글을 기리는 문화 공연, 전시회 같은 행사를 합니다. 이와 별도로 민간 한글 관련 단체가 세종대왕 동상에 꽃바치기, 국어학 학술대회 같은 행사를 합니다.

 


Q5. 한글날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한글날 의의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하기까지 우리에게 말은 있었으나 그것을 적을 글자는 없었습니다. 말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습니다. 말은 말을 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것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글자입니다. 말을 글자로 적으면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나,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도 지식과 정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수가 있습니다. 글자가 없으면 지식의 축적,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한자를 빌어다가 변형하여 쓰거나 그대로 썼습니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생각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적을 수가 없어 일상생활은 물론 문화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애를 걷어내기 위하여 세종대왕 같은 성군(聖君)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일반 백성이 쓰도록 하였으나 문화를 주도하는 조선의 사대부 계층이 오랜 한자, 한문 생활에 젖어 한글 쓰기를 거부한 데 이어, 연산군(燕山君) 때의 한글 탄압 이후로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자로 전락하였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들이 한글에 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개화기에 이르러 황제의 칙명으로 한글에 국문(國文)으로서의 지위를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박영효,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과 같은 선각자들, 주시경과 같은 계몽적 국어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글은 공문서를 비롯한 각종 문서, 신문, 잡지에 널리 쓰게 되고, 이어서 일제강점기에도 민중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한글맞춤법을 만들었으며 국어 문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우리말의 말살 정책으로 큰 위기를 맞았었으나 광복과 더불어 우리말과 한글을 마음 놓고 가르치고 배우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한글이 오늘과 같이 확실하게 우리 글자로 자리를 잡기 전, 광복 직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부끄러울 정도로 문맹률이 극히 높았습니다. 한자 또는 한문은 배우기가 어려워서 보편화되지 못했고, 한글은 배우기가 쉬웠으나 한글을 아는 것으로는 밖에 나가 행세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가르치지를 않아서 아는 사람이 적었던 까닭입니다. 글을 모르고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고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의 향상, 문화의 향상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러 분야의 학문적 발전을 고루 이루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이르러 일정한 국제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한글이라는 글자가 있어 동력원이 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여 한글의 창제와 그 우수성을 기리며, 그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며, 한글과 국어의 발전을 다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입니다.

 

 

한글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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