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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그릇

세브르 (Sèvres)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hainya1004 202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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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프랑스 대표 식기 중 황실, 귀족 식기에 세브르 (Sèvres)에 대한 정보 소개 및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리모쥬 식기를 많이 알고 있지만 수도 인근에 있는 세브르로 느베르 - 리모쥬 - 세브르 프랑스의 식기들이 이어집니다.


세브르(프랑스어: Sèvres)는 파리 시 중심부에서 9.9 km 남서쪽으로 떨어진 센 강에 인접한 코뮌으로 오드센주에 속해있습니다. 면적은 3.91 km², 인구는 22,534 명(1999년)입니다.



세브르 가는 방법
Boulogne-Billancourt와 Chaville에 이어져 있으며 RD(Route National) 10이 지나 갑니다. RD 10은 A12와 연결됩니다. pont de Sèvres부터 RN 118이 시작합니다.
교통편으로 지하철, 국철, 전차, 버스가 있습니다.
Gare de Sèvres-Rive-Gauche역 - 국철(Transilien) N, gare de Sèvres역 - Ville-d'Avray역  - 국철(Transilien) L, U
Porte de Versailles 정거장 - Pont de Bezons 정거장 - Tramway d'Île-de-France 2호선
버스 169, 171, 179, 426 야간버스 N61, N145, N66


면적: 3.91km²
날씨: 기온 21°C, 풍향 서, 풍속 8km/h, 습도 51% (2020년 9월 12일)
인구: 2.333만 (2015년) 국립 통계 경제 연구소
구: Arrondissement of Boulogne-Billancourt
호텔: 3성급 호텔은 평균 €116입니다. (2020년 9월 12일)

 


세브르 도자기

세브르 도자기의 명성은 형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화려한 채색이 먼저입니다. 특히 짙은 곤색은 프랑스 왕가의 색답게 왕립 시절의 세브르를 대표합니다. 그 외에 하늘빛의 연한 블루와 진초록의 녹색 그리고 수선화 꽃 같은 노란색 채색도 세브르 자기의 더욱 유명하게 만든 색들입니다.
이들 채색 유약은 멀리는 팔리시에서 비롯되지만 그 결실을 본 것은 총명하고 아름다웠던 한 여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롱문화의 한가운데 루이 15세의 애첩 마담 퐁파두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8세기 프랑스의 문화,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인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부인(La Marquise de Pompadour 1721-1764)입니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 외에 재주가 많았고 교양도 풍부했습니다. 그녀의 살롱에 볼테르, 디드로와 같은 백과사전파 지식인들이 출입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이들과 지적인 분야에서 교류한 외에도 패션, 건축, 디자인, 가구, 회화, 보석 등에 두루 관심이 많았습니다. 도예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특히 도자기 애호가였던 그녀는 세브르 도자기라는 프랑스 고유의 도자기가 탄생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방 센느에 있던 도자공방을 세브르로 옮기자는 아이디어는 그녀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루이 15세를 설득하여 연성 자기 파이앙스를 생산하는 뱅센 가마를 자기 집과 가까운 세브르로 옮기고, 연구개발 비용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1759년엔 왕실 직속 가마로 승격시켰습니다. 방 센느는 샹티이 성의 도자공방에 있던 도공 뒤보아 형제가 옮겨와 만든 것입니다.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던 퐁파두르 부인은 이 공장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당시 수입되고 있는 동양 자기나 독일 마이센의 자기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마이센에서는 이미 1709년에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1719)가 동양과 같은 자기 제작에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루이 15세를 움직여 방 센느 공방 이외에는 프랑스의 어디에서도 마이센풍 자기와 일본 가키에몬 풍의 자기를 만들어 판매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방 센느에 독점권을 준 것입니다.
이런 지원 아래 방센느 공방은 당연히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녀는 이 방 센느를 베르사유와 파리의 중간이자 자신이 거처하던 벨뷰 궁(Château de Bellevue)에서 가까운 세브르로 옮기게 한 것입니다. 퐁파두르 부인에 빠져있던 루이 15세는 그녀의 제안에 동의했고 나아가 공방에 직접 출자해 왕실 재정을 돕게 했습니다.
이런 뒷받침 아래서 개발된 채색 유약이 ‘왕의 블루(Bleu de Roi)’입니다. 푸른색은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가의 색상이었습니다. 방센느에 이어 세브르에서 이를 도자기 유약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세브르에서는 아직 자기를 굽지 못했습니다.
유럽 최초의 자기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프랑스에 앞서 독일에서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작센 선제후 아우구스투스2세 아래에서 연금술사로 있던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가 1709년 유럽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기의 비밀이 흙에 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유럽에 알려져 있었으나 아무도 그 흙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뵈트거의 성공은 마이센 근처에서 자토(磁土) 즉 카오링을 찾아낸 데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자토가 발견된 것은 이보다 훨씬 뒤로 1768년 리모주 근처에서 발견됐습니다.

세브르는 자토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연질 자기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거기에 아름다운 채색을 입혀 가치를 높였을 뿐입니다. 왕의 블루에 이어 퐁파두르 부인이 특히 좋아했던 장미색, 즉 ‘로즈 드 퐁파두르(Rose de Pompadour)’도 개발됐습니다. 이는 장미색이라고 해도 핑크에 더 가까운 색입니다. 이 유약은 당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총재이자 장식 미술가였던 장 에로가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으면서 제조법을 남기지 않아 그 후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세브르 도자기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금채 자기인데, 청색과 녹색 그리고 골드빛의 오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청금 색은 세브르 도자기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브르 가마는 리모주 부근의 모트비엔 지방에서 고령토 층이 발견되면서, 중국 자기와 같은 고급 자기인 경성 도자기를 개발하는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지나치게 붉지 않으면서 희미하거나 연하지도 않은 분홍 빛 바탕 색깔인 일명 퐁파두르 장밋빛과 여기에 꽃 장식이나 전원풍경, 풍속화 등을 그려 넣어 화려하기 그지없는 세브르 도자기를 완성했습니다.  
로즈 드 퐁파두르로 제작된 도자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배 모습을 한 포프리 향(香) 항아리입니다. 포푸리(Pot-pourri)는 여러 향료를 배합해 방안에 놓아두는 단지 또는 항아리를 말합니다. 루이 14세 무렵 프랑스는 유럽 최대의 향료 소비국이었습니다. 실내에 좋은 향내를 내기 위한 여러 도구가 고안됐는데 포프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퐁파두르 부인의 의뢰로 배 모습을 한 포푸리가 제작됐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금은세공가로 방 센느 시절부터 디자인을 맡았던 장-클로드 뒤플레시(Jean-Claude Duplessis 1695-1774)가 만들었습니다. 1760년에 12개가 만든 것 중 현재 10개가 남아있습니다. 콩데 집안의 8대 당주인 앙리조셉 공도 이를 하나 구입한 것으로 전합니다. 당시 구입 가격은 1,200 리브르였습니다.

 


퐁파두르 후작부인 시대부터 세브르에서 만든 도자기는 모두 박물관 2층에 전시돼 있습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영광의 홀 중앙에 놓인 3미터 높이의 백자 항아리 넵튠(le vase de Neptune)입니다.
크기가 큰 도자기는 불 속에서 흙이 용융될 때 자기의 흙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저앉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일정 크기 이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제작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초대형의 이 백자 항아리는 1867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때 세브르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출품된 것입니다.
세브르 이외의 프랑스 여타 도요지에서 만든 도자기를 비롯해 서양 각국의 도자기는 1층에 전시돼있습니다. 한중일(韓中日)의 동양 도자기 역시 이들과 함께 1층 전시실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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